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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Maple - 19화, 인(/자)외불신

대표태그 #Falling

일반태그 #Maple #시우의_이야기 #소설

2016년 8월 4일 오전 12시 45분 조회: 2270 나이트Lv.52 Glorier

"아홉 살 때, 난 에반스빌 황풍 거리에서 살고 있었다."

 

직후 시오는 시선이 살짝 허공을 향해 있었다.

 

"에반스빌..? 그렇다면 트라이아 주민이었단 건가요?"

 

"뭐... 그런 셈이지. 지금 너희한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옛날의 인품이라고 해두겠어."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 것.'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그런 말이 흘러나온다. 지금 이 사람, 아니 NPC가 하는 얘기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인지 확실하게 구분 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지. 뭐, 그때는 나도 다른 너희가 흔히 말하는 NPC라는 존재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지. 나도 부모님이 있었고, 다만 특별한 게 있다면 난 인간과 마족의 혼혈이었다. 파토스와 같은 처**까. 그 당시에는 에레브 여제도 친구였네. 아무리 그녀와 그녀의 집안이 고결하고 가장 높은 신분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평민들과 어울리는 제법 평등한 사고방식을 가졌던 모양이지. 나는 부모님의 말씀대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친구들이 양계장에 가서 닭을 훔쳐먹으려고 할 때에도 가서 말릴 정도로 지금의 너희들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13살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고 있었지. 메이플 대륙에 한 번 전쟁이 터진 것이다."

 

"전쟁.. 이요?"

 

시온이 반문했다.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트라이아 내부 권력자들끼리의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역사책 같은 곳에서 나올 리가 없지. 트라이아 왕국의 흑역사에 비견되고 그 당시 집권한 베르나르 정권이 모든 문서를 검열했으니까. 다만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에 오가는 말들은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 그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주민들 일부와 트라이아 고위 간부들 일부, 그리고 여제 에레브가 전부이다."

 

"13살이면.... 대략 2~30년 정도가 흘렀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그 사이에 어떻게 사람들을 통제가 가능한 거죠?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시온은 조금 의심의 눈초리로 투르카를 바라보았다.

 

"가능하지. 당시에 집권한 베르나르는 필사적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편 상당히 압박하는 정책을 펼쳤지. 도로와 도로를 닦고, 사업, 상업자들에게 세금 감면이나 통행 우선권, 법적 판결 경화 혜택 등을 시행하는 한편, 신문사와 우편물을 검열하고, 트라이아 대도서관에 새로 들어오는 책들 또한 수시로 감시하고 집회나 각종 단체를 해산시켰다."

 

폭군에 가까운 행보를 걸은 베르나르의 모습을 책에서는 상당히 미화시키거나 감추었다. 백성들에게 존경받고 또 그런 백성들을 사랑한 성군이라고 가르쳤을 뿐. 시오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은 곧 진실이 된다.

 

"사실이에요?"

 

"내 얘기를 믿든 말든 그건 너의 자유다. 다만 난 내 얘기를 할 뿐이다. 그걸 듣고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는 내가 아니라 너가 판단하는 거지."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그 일이 있을 때 베르나르가 뭐라고 선언했는지 아나? 사회의 불안을 일으키는 것은 나 같은 혼혈이나 요정 때문이라고 말하더군. 인간만이 존엄하다, 인간 이외의 존재는 모두 가치 없다면서. 그 일이 있은 뒤로 학교에선 매우 빠른 속도로 혼혈들은 왕따가 되었다는 흔해빠진 이야기지. 에레브는 적어도 다를 줄 알았는데... 바라보는 눈은 동정에 가까웠지. 난.... 학교를 나왔다. 이후 정처 없이 이곳저곳 떠돌던 중 얼떨결에 엘리니아에 들어갔다. 트라이아에서 배척받은 존재들이 오면 드물게 받아줬다더군. 덕분에 그 안에서 당분간 인간들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거할 수 있었네. 하루는 도서관을 거닐고 있던 중이었지... 무심결에 꺼낸 책에 어둠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어. 당연히 호기심이 발동해서 거기에서 '절대로 가면 안 된다'라고 적혀있는 검은 안개의 길까지 맨몸으로 갔다. 당시에는 발록이나 몬스터도 없었기에 푹푹 찐다는 것 빼고는 제법 갈만했어. 다만... 평범한 인간은 절대로 가선 안되는 곳이었지. 모든 이성을 마비시키고 그저 매혹시키고 유혹시키는.. 도저히 현세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물건이 그곳에 있었다. 마왕은 그렇게 사람들을 유혹하지."

 

투르카가 얘기를 하던 도중, 밖에서 다급히 뛰어온 해골 병사 하나가 문 앞에 멈춰 섰다.

 

"ㅌ.. 투르카님! 헤네시스가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 뭐? 헤네시스가? 페리온이 벌써 뚫렸을 리는 없고... 어떻게 된 거지."

 

"잠깐만요. 투르카 당신이 왜 헤네시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거죠?"

 

시온의 물음에 투르카는 당연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내가 얻고자 하는 세계를 누군가가 빼앗아가면 대단한 실례지. 난 이 세계를 지배하고 싶을 뿐 부술 마음은 없다. 그리고 하나 말해두지. 난 마왕의 힘을 얻긴 했어도 그에게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진 않았네. 오히려 대적했지. 그 녀석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욕망을 환상으로 채워주고 육신을 빼앗아간다. 나는 이 두 눈으로 보고 싶어. 살아있는 상태에서, 세계가 변화하는 모습을. 세계가 날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은 잠시 일이 생겨서 가봐야겠네. 미안하다."

 

그러고는 그 해골 병사를 뒤따라 가던 중, 돌연 돌아서더니 시오를 향해 말했다.

 

"어떤가, 내 삶이. 다음에는 자네의 삶도 이야기해주게. 꽤나 닮은 점이 많을 것 같아서 말이야."

 

 

 

 

 

 

 

"내 삶이라..."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시오는 빠르게 걸어나갔다. 투르카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이고, 누구와 싸우는 것일까. 애초에 그는 싸우고 있는 걸까,라는 곳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할 겸 스킬 창을 열어보았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궁극기'라는 별도의 칸에 시선이 멈췄다. '심판;영광의 검'이라는 기술. 자신의 삶과는 다소 대비되는 거창한 이름이긴 했지만 위력만큼은 걸출했다. 스크롤을 돌려 목록 아래를 보았다. '커스텀 스킬', '유성검'. SP 소모율은 40, 60% 피해 X 10회. 총 시전 시간은 1.52초. 기타 상태 이상은 없음.

 

"limit, set."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창이 뜨길 기다렸다. 시선 전체를 가로막는 거대한 스킬 조정창이 떴다. 손가락이 아니라 육성으로 조정하는, 다만 이때의 목소리는 외부로는 들리지 않는다.

 

"재조정, 임계치 배율 90%, 최소 50%. 결괏값, SP 비용 10% 반환. 이외의 데이터 자동 조정."

 

유저가 요구하는 성능을 입력하고 그 외의 것들은 시스템의 보정을 받는다. 다만 유저의 요구치는 어느 정도 제한을 걸어놓아서 밸런스의 큰 지장은 없다. 더군다나 PVP에서는 궁극기와 커스텀 스킬 모두 사용할 수 없다.

 

"커스텀 스킬 조정 종료."

 

화면이 걷히고 다시 어두침침한 밤하늘이 펼쳐졌다. 페리온 전선은 아무래도 쉐도우 게이트와 쉐도우 월드 측으로 파견된 병력들 때문에 유지가 어려워 유저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시오 자신도 그곳으로 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으나 어차피 메이플 내 최강 길드 '붉은 사냥개'가 있으니 쉽게 밀리진 않을 터였다. 다만 계속해서 걸리는 것이 있다. 이곳에서 죽으면 진짜로 죽는 건지. 정말로 사력을 다해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오히려 이곳에서 살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들을 내밀고 그것을 채우라고 요구하는 세계든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는 친구들보다도 더 좋았다. 능력이라는 것이 자신의 레벨과 전투 센스, 경험으로 평가되는 곳이라면 오히려 현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랬다. 자신은 현실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여기는 노력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타인과 복잡한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되고.'

 

"정말 그런 삶을 원하는 겐가?"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순간 당황해서, 아니 정확히는 뒤에서 말이 들렸다기보단 머릿속에서만 하던 말을 마치 들은 것 같아서 더 놀란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았다.

 

"ㅎ..하타르? 선생님께서 왜 이런 곳에..?"

 

"잠깐 아시모프 좀 만나려고 엘레니아에 가는 길이었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슬쩍 훔처보는 악취미가 있어서 미안하네. 어쨌든... 정말로 그런 삶에 만족하는 건지 물어보았네."

 

천천히 근처에 있는 벤치로 향했다. 거주지라서 그런지 확실히 공원이나 각종 편의시설이 있어서 편하게 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피로도까지 구현한 이 게임의 개발자들에게 경의를.

 

"보아하니 만나기를 꺼려하는 자와 만난 모양이군그래. 그런 표정 짓지 말게나. 기억을 조금 더듬어 봤네. 다는 안 봤으니 뭐 **을 봤다느니 뭐니 그런 얘기는 안 꺼내도록 하지."

 

'빠직'

 

"그나저나, 자네는 꿈이 있는가?"

 

".... 없어요 아직은. 제가 뭘 잘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 노인네가 지금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조언? 그런 걸 바란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에 목이 마른 자신에게 조금의 선의를 베푼다는 차원에서 벤치에서 일어나진 않았다.

 

"그렇군... 차차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알게 될 걸세. 너무 조급해하진 말아라."

 

"어떻게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어요... 곧 있으면 어른이 되는데."

 

하타르는 잠시 침을 삼키고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확실히 자네는 조급해하고 있어. 미래가 불명확하다는 것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연속성이었네. 다만 그 계기가 된 것은... 아마 현실을 직시한 것에서부터 시작하겠지. 그게 어떤 사건이었는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나?"

 

시오는 잠시 말이 없었다. 표정이 심하게 어두워지더니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으나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 했다.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 왕따를 당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그렇게 느낀 거겠죠. 어릴 때부터 유독 가난해서 경험해** 못한 것들이 많았고, 남들이 체험해본 것을 저는 망상으로 채워 넣어서 그들과는 항상 이야기가 달랐어요. 더군다나 그들은 저를 싫어하는 듯했고요. 그냥... 대화를 그만뒀어요. 어차피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나마 가까운 친구가 둘 정도 있지만."

 

가면을 쓴 사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겐가?"

 

정곡을 찔린 것인지, 시오는 고개를 돌려서 하타를 쳐다보았다.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지도 모르죠. 그런 애들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 움츠려서 내가 알던 세계가 갑자기 변해서 또 나를 힘들게 하진 않을까... 아니, 어쩌면 저 스스로가 그들에 맞춰서 바뀌는 것이 두려웠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몰라요. 스스로를 마치 잃어버린다고 생각했을까요."

 

"변화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여러운 것이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계속해서 인간은 스스로에게 변화를 유도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네. 자네만 어려운 게 아닐세. 다만 자네 또한 어려울 뿐이지. 자네는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 이유가 없으면 그 행동은 곧 무의미하고 실천할 수 없지. 너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긍지일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는 결국 타인도 믿지 못하는 법이라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운명이 자네를 이끌어 줄 걸세. 자네 친구들을 한 번 믿고 의지하면 그다음은 폭풍 같던 마음이 안정되고 조금씩 닫힌 문을 열게 될지도 모르겠군."

 

"그런가요..."

 

"이런, 친구가 기다리고 있겠군. 먼저 가보겠네. 자네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느껴지는군. 나중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

 

그러고는 특유의 깃털들을 이리저리 휘날리며 지팡이를 쥐고 하타르는 엘리니아로 향했다.

 

 

 

 

 

 

 

 

 

 

"페리온 전선이 현재 교착화된 상태입니다, 루 님."

 

조용히 복도를 거닐고 있던 긴 외투를 입은 한 청년에게 부하 내지 신하로 보이는 자가 다가왔다.

 

"용의 분노는 별 효력을 못 본 건가."

 

"아니요, 오히려 확실하게 그 화력을 입증해냈습니다. 다만 적진에 붉은 사냥개 길드가 포진해 있어 상당히 견고하다고 합니다."

 

"뭐... 상관은 없다. 현재 발굴 진행도는 얼마나 되나?"

 

"대략 절반 정도 끝났습니다. 공성 병기 5기 정도가 준비됐습니다."

 

루라고 하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시 전선에 투입해."

 

"네..? 아직 발굴된 지 그리되지 않아 제대로 성능 시험도 되지 않았습니다만..."

 

"최대한 빨리 밀고 올라가야 한단 말이다.. 탈리스커에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뭐야?"

 

잡음과 노이즈가 심하게 일어나다 이내 완전히 두절된 드론의 영상을 보고 탈리스커 정보원들은 당황했다.

 

"페리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맥 토플러님."

 

한 정보원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바퀴 달린 의자를 뒤로 빼서 토플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뭔가 케이트."

 

"... 전차를 보내랍니다."

 

 

 

"매트님!!"

 

토플러가 황급히 연구소장 매트가 있는 개인 사무실로 뛰어갔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맥."

 

"ㅍ... 페리온에서 전차 발진을 요청했습니다!"

 

"전차...? 전차의 존재가 어떻게 알려진 거지?"

 

매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튼 보내셔야 합니다. 페리온의 상황이 지금 말이 아닙니다!"

 

"도대체 어떻게 됐길래 이리 호들갑인 겁니까. 천천히 얘기해 보십시오."

 

"그... 정체불명의 좀비 같은 존재들이 페리온을 습격한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무시무시한 위력의 공성 대포 같은 것의 존재도 확인된 상태입니다. 점점 전선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서 황급히 저희도 직간접적으로라도 지원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매트는 순간 초점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가,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한숨을 쉬었다.

 

".... 긴급 총회를 소집해주십시오. 의논할 것이 많을 것 같소."

 

 

 

 

 

 

ps.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오전 11시였습니다. 다시 시계를 봤습니다. 오후 11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