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직접 운반해 주겠다면서 왜 열차에 싣는 건데..."
"직접 날라주겠다고 했지 페리온까지 옮겨주겠다고는 안 했잖아?"
"아니 그래도..."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동안, 열차에는 거대한 파란색 컨테이너 박스가 실리고 있었다. 꽤나 덩치가 커서 짐칸 중에서도 외부로 드러나는 화물 차량에 두어야 했다. 뭐, 저렇게 덩치 큰 녀석은 눈에 띄기 쉽지만 열차만 골라서 터는 강도가 아닌 이상 옮기는 건 쉽지 않을 것이었다.
"뭐, 별일 없겠지."
그러고는 두 사람은 페리온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향했다. 역으로 걸어 들어가자, 푸른색의 긴 막대형 조명과 그 조명이 박힌 철판 등 전체적으로 세련된 디자인으로 돼있었다. 열차는 자기 부상, 최고 속도는 시속 500km. 열차에는 호위용 자동 포탑 3개가 각각 후미, 두미 차량과 중앙 차량 천장에 배치되어 있다.
열차 안으로 들어가자 흰색의 바닥과 천장,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회색의 의자(라기에는 소파에 가까운)가 있었다. 아까 역에서 끊은 표대로 자리에 가서 앉고는 열차가 출발할 때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이윽고 열차가 천천히 출발하고, 바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위잉' 하는 소리가 나면서 천천히 떠오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시오는 블랙마켓의 시세를 확인했다. 블랙마켓에 직접 가서 물건을 위탁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만 보는 것이었지만, 일단 가장 돈벌이가 쉬운 오닉스를 확인해보았다.
"개당 150인가."
"응? 그새 또 내려갔어?"
시온이 고개를 슬쩍 돌려서 보니 어제보다 오닉스 가격이 10 메소 정도 내려가 있었다. 시온도 '시장' 탭을 눌러서 현재 주식 시장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주식 창을 누르자 최상단에 '블랙 윈드'에 주 당 256만 3367 메소라고 떴다. 그 밑에는 '사성 전자'라는 탈리스커 지역의 한 건축 아이템 전문 유저 회사가 있었다. 평소 외계인을 납치해서 만든다는 소문이 있던지라 정부에서 외계인 인권을 명목으로 자주 검문하는 회사다.
열차는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뒤로 한 체, 시오는 가볍게 부루마블이나 하고 있었다.
"지금이다."
하늘에 떠 있던 로빈의 말에 주변에서 감돌던 검은색의 연기 같은 무언가가 점점 커지더니 열차로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열차는 철판이 뭉개지는 소리와 함께 승객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유리창 일부가 깨졌고, 열차 중간의 한 승객칸은 완전히 지붕이 뚫려버렸다. 그 커다란 구멍으로 로빈이 사뿐하게 내려왔다.
검은 연기가 열차를 기습적으로 습격하자 자동으로 포탑들이 돌아서 검은 연기를 향해 2문 기관포를 작동시켰다. 곧 검은 연기가 걷히고 그 안에 숨은 각종 스티지 녀석들이 포탑을 향해 달려들었다.
"ㅁ, 뭐야!"
순간적으로 열차가 크게 진동하면서 시오와 시온은 깜짝 놀랐다. 진동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자 두 사람을 비롯한 승객들은 일어났다. 그리고 창밖을 보자 웬 검은색 연기가 앞 칸에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다. 승객들 몇은 비명소리와 함께 뒤 칸으로 뛰어갔고, 탑승해있던 모험가들은 전무 무기를 들고 앞 칸으로 향하는 문에 섰다.
"뭔진 모르겠지만 몬스터라면 잡아버리는 게 낫겠지?"
시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서서 문을 열었다. 맹렬하게 달리는 바람에 바람이 세차게 안면을 강타했다. 제대로 눈도 못 뜨는 상태에서 시오는 주섬주섬 문 옆에 있는 사다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다리에 손이 닿자, 사다리 쪽으로 순식간에 몸을 옮겼다. 그리고는 사다리 밑에 있는 갈고리를 몸 허리띠에 걸고 사다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글을 장착하고는 시오의 뒤를 따라 시오의 허리띠에 걸린 갈고리와 이어진 밧줄을 한손에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붕 위로 올라가자 바람은 심각할 정도였다. 밧줄 중간중간에 갈고리가 있어서 다들 몸에 걸어 망정이지, 만약 갈고리가 없었다면 한 손은 계속 밧줄을 붙잡은 상태로 제대로 싸우지도 못 했을 것이다. 겨우 올라가서 전방을 보자, 등 뒤에 있는 포탑을 향해 스티지들이 맹렬히 돌진해오고 있었다.
"저놈들은 날아가지도 않나."
라고 하면서 시온은 잠시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만들더니, 몸 주변으로 에너지가 휘감기며 당기고 있던 활을 놓았다. 그러자 강렬한 에너지는 곧 화살이 되고, 그 화살은 말도 안 되는 속력으로 스티지들을 향해 날아갔다. 스티지들이 스크류 드라이브 샷을 맞자, 한방에 상당한 수가 열차 주위로 떨어져 나갔다.
"이런, 손님을 제법 거칠게 대하시는군."
로빈이 어느새 시오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포탑이 로빈을 향해 방향을 틀자 로빈은 보호막을 펼치고 모험가들을 바라봤다.
"이거 이거, 다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진 말라고. 나도 위에서 시켜서 이러는 거니까. 다만 나도 양심이란 게 있어 한가지 제안을 하지."
"무슨 제안인데."
시오가 따지듯이 물었다.
"간단해. 나랑 게임을 해서 너희가 이기면 바로 난 후퇴할 거고 저 녀석들도 더 이상 열차를 괴롭히진 않을 거야."
"진다면?"
"이 열차에 실린 화물들을 전부 가져가겠다."
시오는 얼굴을 싸늘하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머리가 휘날렸다.
"요약해서 말해. 무슨 게임을 하고 싶은 건데."
"저기 달려오는 스티지들이 이 포탑을 부수지 않게 하면 되는 간단한 게임이야."
로빈이 가리킨 곳에는 한참을 질주하다 멈춘 스티지들이 잔뜩 있었다.
"저렇게 바글거리는 놈들을 다 쓰러트리라고?"
"말도 안 되지! 우리가 아무리 만랩이라고 해도 저렇게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한 방은 맞을 거 아냐!"
"그러니까 게임인 거지. 어디 잘 즐겨보라고~"
그러고는 로빈은 하늘로 붕 떠서 멀리서 열차를 바라봤다.
"아오 저 망할 놈..."
로빈이 손가락을 튕기자, 스티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제기ㄹ..."
시오의 앞에서 한 헤비거너가 어마어마한 전격 에너지를 일직선으로 방출했고, 그 에너지를 맞은 스티지들은 양옆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헤비거너들도 일제히 일렉트릭 블라스트를 난사해대며 스티지들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스티지들이 바글거린다는 것이 그 첫번째요, 두 번째는 스티지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스티지 뒤에 있던 미니 발록은 예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 거대한 덩치가 어떻게 열차 위에 있겠느냐는 그 녀석이 날아다닌다는 것과 스티지들이 발록을 가릴 정도로 가득했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하필 열차가 급커브 구간에 진입하고, 모험가들은 전부 열차 왼쪽으로 튕겨져나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시오는 밧줄에 걸린 갈고리 하나를 지붕 바닥의 공기 순환기 입구에 걸어 놓았고, 덕분에 밧줄 때문에 몸이 날아가는 일은 피했다. 커브길로 변하자 제일 후미 구간에 있던 포탑이 사격을 시작했고, 총알 한 발이 발록을 공격하자 흥분한 미니 발록은 발 하나를 그대로 열차에 내리찍었다!
어마어마한 진동과 함께 열차가 들썩였고, 선로를 이탈한 열차는 최선두에 있는 부분을 기준으로 좌우로 선로 위를 왔다갔다 했다. 비유를 해서 말하자면, 종이에 계단 접기를 엄청 많이 한 뒤에 그 선들을 세로로 놓고 선대로 다 접어놓은 상태에서 한쪽 끝만 잡고 놓으면 생기는 그 부채꼴 모양으로 열차가 계속 움직였다는 소리다.
"우웁..."
목구멍을 넘어오려는 토를 시온은 겨우 참았다. 미니 발록이 스티지들을 제치고 빠르게 날아들자, 헤비거너들은 미니 발록을 락온 한 뒤, 호밍 미사일을 난사해댔다. 물론 아무리 발록이 미니 사이즈라고 해도 썩어도 준치라고, 몇 대 맞은 걸로는 끄떡도 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와 냅다 포탑이 달린 객차째로 발로 밟아서 앞차와의 체인을 끊어놓았다.
가속도만 해도 심한데 선로를 이탈한 열차는 그대로 뒤로 튕겨져나갔다. 하늘을 잠시 동안 날던 거대한 철 지렁이는 곧 바닥의 숲으로 처박히고, 어마어마한 먼지바람과 함께 유저들 또한 튕겨져 나갔다. 하늘에서 바라보던 로빈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런, 좀 셌나 보군. 그럼 약속대로 화물칸에 있던 짐들은 내가 가져가겠다."
"그만둬!"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1 대 1로 승부를 내보면 좋겠군. 투르카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만큼 대단한 소년이길 기대하마."
라고 말하며 염력을 사용해서 그는 화물차량째로 들어서는 텔레포트 주문을 읊으며 그대로 사라졌다. 너무 허무했던 나머지 시오는 그저 멍하니 로빈이 사라진 하늘만을 바라보다가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그리고 기절한 모험가들을 주변으로 스티지들과 미니 발록이 모여들었다.
"얘는 언제 오는 거야..."
시난주는 투덜거리면서 간이 병원 문 앞에서 캔 하나를 뽑아들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캬~ 역시 환타의 특유 톡 쏘는 맛이란~"
미식가가 된 듯이 환타의 맛을 읊은 그녀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시난주는 문뜩, 하늘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떠다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 눈이 커지고 그녀는 들고 있던 빈 캔을 떨어뜨렸다. 그 물체와 그 옆에 이던 검은 무언가는 천천히 내려와선 구르는 천둥이 있는 막사로 천천히 다가왔다.
"여, 이거 족장님의 아들 아니신가."
"로빈?"
삽시간에 구르는 천둥은 등에 꽂혀있던 대검을 뽑아들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아아, 오늘도 싸우러 온 건 아냐, 다만 너희 측에서 누군가가 심부름을 시켰더군. 그래서 대신 가져왔지."
그러고는 옆에 떠다니던 컨테이너 박스를 그대로 바닥에 툭 내던졌다. 덕분에 바닥에 모래바람이 일어나며 막사들 몇을 날려벼렸다.
"심부름?"
시난주가 다가오고, 곧 컨테이너 박스가 땅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박살이 나자 거기에는 듬성듬성 돌이 붙어있는 영롱하게 빛나는 금빛 수정이 하나 있었다.
"이건... 야! 너 내 심부름꾼을 어떻게 한 거야!!"
"아, 잠깐 손 좀 봐줬지. 내 상관이 걔네들을 대려오라고 시켜서 말야. 아, 그리고 페리온이 털리는 건 내 상관도 싫어하시는 모양이야. 그래서 친히 이 내가 몸소 심부름을 대신해주셨다 이 말이지. 그럼 이만."
"....? 야, 잠만, 그래서 어쨌냐고!!"
하지만 로빈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뭐지? 심부름은 뭐고 또 저 물건은 뭐냐?"
"아, 천둥님 그게 저..."
"뭔데 그러느냐. 빨리 말하거라. 안 그래도 눈앞에서 적을 놓쳐서 매우 화가 난 상태니까 말이지."
"윽.... 머리야..."
시오는 눈을 떴다. 문득, 자신이 지금 엘리니아 숲이 아니라 차가운 돌바닥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일어났구나."
자신의 옆에는 왠 잘생긴 청년 하나가 서 있었다.
"... 누.. 누구.."
"나? 너희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인물 중 하나지."
얼마후 시오 옆에 쓰러져있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오의 정신이 제대로 돌아왔고 다시 그 청년을 봤을 때, 무언가 낯이 익음을 알아챘다.
"ㅅ.. 설마 당신..."
(ps. 제일 허무했던 회차가 아닌가 싶습니다/더불어 급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