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일단 커닝 시티로 간 다음에 택시 태고 페리온 근처로 가야겠네."
시온의 말에 시오가 반박했다.
"까짓것 헬기 타도 되잖아?"
"헬기는 메소 낭비가 심하잖아. 그리고 하늘로 날아가다가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커닝 시티로 돌아온 뒤, 두 사람은 택시 정류장을 찾았다. 언제나 택시 정류장은 사람들로 북적였으나, 택시 정류장 안에 있는 지도에서 목적지를 누르고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택시가 오는 구조라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아도 되었다. 시온은 목적지로 '뼈다리 공사장'을 찍었다. 그리고 지도 옆에 있는 빨간색 호출 버튼을 누르자, 저 멀리서 택시가 순식간에 워프하듯이 날아들었다. 얼른 택시 문을 열고 들어간 뒤, 동승 확인 메시지를 눌렀다.
"시난주, 항상 말하지만 독단 행동은 삼가주게."
땀을 흘리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쉬고 있던 시난주 옆으로 NoNaMe 이 다가왔다.
"하지만 난 잠시만 이 길드에 있기로 한 거고, 규율 따위에 얽매이고 싶진 않은데. 너처럼 말야."
그러자 NoNaMe 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고, 곧이어 전방에서 날아드는 화살들을 피하느라 시난주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뒤로 백덤블링을 하며 일어섰다.
"흣차, 그런고로, 앞으로도 난 계~ 속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테니깐, 그리 알고 있어."
그러고는 시난주는 두 팔을 머리 뒤로 맞대면서 천천히 전장에서 빠져나왔다.
"하여간 저 계집애는 진짜.... 어휴..."
"대장님, 금액 입금됐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적당히 전선 좀 만들어 보자고."
그러고는 NoNaMe 은 등 뒤에서 '난폭한 빙하의 대검'을 꺼내들었다. 재빠르게 거친 황야로 달려들어 움직이는 시체 덩어리들의 목을 대충 베어 넘기고는 침을 찍 뱉더니 한 번 포효를 지르고는 땅에 검을 내리찍었다. 주변이 흔들리며 지반이 갈라졌고, 검에서 급격하게 기온이 변하면서 차가운 빙하의 기운이 흘러나온 채로 휘두르자 희고 푸른빛을 띠는 검기가 날아갔다.
뼈다리 공사장 택시 정류장에 도달하자, 건조한 바람이 불어왔다. 몇 번 쿨럭대면서 시오가 차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밖에서 왠 강풍이 불어닥치더니 살결을 닥치는 대로 베어버리는 것이다. 팔로 얼굴을 가리면서 바라본 곳에는 몬스터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일단 여기부터 정리하고 가볼까?"
그러고는 시오는 방패에 기운을 끌어 담아 전방으로 들어 올렸고, 거대한 방패의 형태가 위로 띄워졌다. 시오의 체력표 아래 (정확히 말하면 더이상 체력표는 의미가 없어졌다. 체력제가 아니라 모듈제와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사실상 상태표에 가까웠다.) 에 '카운터' 이미지가 출력됐고, 그 상태로 바로 시오는 방패를 전방에 내세운 상태로 돌격해나가 날카로운 검 끝으로 주술사 하나의 복부를 찔러 넣었다. 시온은 활의 끈을 잡고 그 상태로 당겼다. 그러자 가상의 화살이 활에 생겼고 머릿속으로 에어붐을 일으키며 날아가는 화살을 연상한 체로 손을 놓자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가상 상태였던 화살이 생겨나며 날아갔다. 공격을 맞은 주술사는 목이 날아갔다.
"자, 대충 정리된 거지?"
시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왼쪽을 바라보자 저 멀리에 '녹아내리는 모래시계'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었다. 하지만 표지판으로 가는 길뿐만 아니라 모래시계 주변에도 몬스터가 장난 아니게 많았다.
"무시하고 달려?"
시오는 다시 인벤토리에서 오토바이를 꺼낸 뒤, 신나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가막새 마을에 가까워지자 병사들이 후퇴하다 만 듯한 애매한 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근처로 다가가자 병사들 몇이 다가와 신분을 물었다. 자신을 모험가라고 소개하자 병사들은 가로막았던 창을 거두어 들어가게 해주었다.
"왜 길을 막는 거야?"
"아마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겠지."
오토바이를 집어넣고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변에 늘어선 천막들과 임시 거처들, 재개발 열풍으로 지어진 일부 시멘트 건물들이 보였다. 시멘트 건물에선 부상당한 병사들이 계속해서 드나들고 있었고, 천막들 사이로 각종 무기와 식량들이 오갔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총탄음이 연속해서 들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여, 심부름꾼 왔네."
시난주가 정겹게 시오를 맞았다.
"글쎄 심부름꾼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깐..."
"에이, 왜 그래~ 좀 그렇게 부를 수도 있지~"
"..."
"저..."
시온이 쭈뼛쭈뼛 거리면서 시난주에게 말을 걸었다.
"응? 뭔데 뭔데? 뭔가 할 말이라도 있어?"
"그게.... ㅇ... 그... 저... 팬이에욧!!!!"
".... 하?"
"ㅈ.. 진짜 옛날부터 선생님 ㅈ,. 존경해왔어요, 아니 했습니다!! 저 그림 제자로 받아주세요오!!"
"....에? 어어.... 어? 얘 왜 이러니?"
옆에 있던 시오에게 묻자 시오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하고는 모른다는 듯이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어찌 됐든, 대충 페리온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인데..."
"페리온을 포기한다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저렇게 무한정 살아나서야 우리 쪽만 손실이 클 거라고. 그리고 우리는 이제 한 번 죽으면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잖아."
"...."
"그. 래. 서!"
시난주는 끊어 말하며 이제 본론을 꺼내니깐 들으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엘리니아에 가서 '정지장' 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가져와."
"정지장이요?"
"그 왜, 일종의 결계나 보호막 같은 거 있잖아. 대신에 마법사가 만들면 계속해서 유지해야 되니까 오래 못 버티잖아."
"그렇긴 한데 왜 하필 저희한테 그걸 시키세요?"
"음, 내가 사정이 좀 있어서 그래. 누구누구한테 시키자니 중간에 가로챌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도와줄 수 있지?"
"...."
"물론 무보수는 아니고. 나중에 내가 한턱 쏠 테니깐."
"... 네.. "
"저기... 그래서 싸인 좀.."
"그럼 난 이만."
손을 흔들면서 시난주는 난장판이 벌어지는 곳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아.. ㅆ.. 싸인 한 번만.."
결국 좌절하며 시온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우앙ㅠㅠ" 하면서 뒹굴뒹굴하는 것이다.
"하... 그래, 엘리니아에 가서 보호막 생**나 찾으면 된다는 거지? 하여간 일이 계속 쌓이네... 그만 일어나고 가자."
"싫어!! ㅠㅠ."
"...."
"싫어-어! ㅠㅠ"
강제로 끌려가며 시온이 울며불며 난리를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온의 두 손을 잡은 체 오토바이에 태우고는 그대로 출발했다.
"자, 단돈 500만 메소로 던전에서 피해량 30% 감소 무제한 보호막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멸의 정수 한 세트가 200만 메소!"
엘리니아는 블랙마켓 못지않은 흥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특히 발록 무기 같은 경우는 50레벨 장비에서 '어떠한' 것을 하면 만렙 장비가 되어서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상당한 고가의, 하지만 물건값은 하는 녀석으로 통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어디 가서 찾으란 거야... 지천에 널리기라도 한 줄 아나 그 여자는.."
투덜대면서 시오가 엘리니아 택시 정거장을 걸어 나왔다. 언제나 바글거리는 인파 속에서 그는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어딜 가서 찾으란 거야... 아무런 단서도 없이.
"일단 마법의 전당으로 가서 좀 물어봐야겠어."
두 사람이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건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바삐 오가면서 책들을 옮기고 있었다. 아니, 사람이라기보단 요정이라고 부르는 게 그들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 것이다.
"저기..."
바삐 오가던 요정 한 명을 붙잡고는 시오가 물었다.
"트라이아 왕실 기사단입니다만, 기사단장 알론님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혹시 정지장을 유지시키는 물건이 어딨는지 좀 알 수 있을까요?"
"에...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일단 근처 도서관에서 좀 확인 좀 할 테니까 거기 벤치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아이고 허리야..."
결국 두 사람은 밖에 있는 벤치에서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천천히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걸터앉아서 얌전히 쉬고 있자니,
"시우야."
하림이 말을 걸었다.
"왜."
"너 혹시 이상형 있어?"
침을 꿀꺽 삼키면서 하림이 물었다. 웬지 초점도 흔들리는 게 뭔가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싶었다.
"글쎄... 근대 왜?"
'다행이다'라고 하림은 생각했다.
"내가 맞선 시켜주려고 그러지 뭘 더 있겠어."
"딱히... 성격만 좋으면 되는데."
시우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넌 어째 남자가 돼서 여자에 관심이 없니?"
"...."
하긴, 시우가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해도 별로 망설이지 않는 거겠지,라고 하림은 생각했다.
"됐다 뭐... 호빵 먹을래?"
"호빵? 있어?"
"물론이지~ 니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그 정도는 당연히 챙겨둬야지."
그러면서 그녀는 메뉴를 불러와 인벤토리에서 호빵을 선택했다. 아이콘을 누르자 수량을 묻는 창이 떴고, 2개를 누르고 '확인'을 누르자 손 위에서 푸른빛으로 호빵의 형태가 잠시 일렁이더니 파박! 하며 호빵이 나타났다. 하나를 시우에게 주고 하나는 하림 본인이 한 입 물었다.
"근데 내가 호빵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
"내가 너랑 같이 다닌 게 몇 년인데..ㅋㅋ"
그러면서 그녀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호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마법의 전당에서 요정 하나가 걸어 나와 벤치에 앉아있는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아, 오래 기다리셨죠? 지금 막 찾았어요. 당신들이 찾고 계신 물건이 '차원 격벽' 맞죠?"
"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오는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은 그 요정의 뒤를 따라갔다. 그 남자 요정은 자신들이 있던 층의 바로 밑에 있는 창고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곳에 들어가자 오랜 세월 동안 물건들을 보관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날리지 않는 깨끗한 공간이 나왔다. 두 사람은 물이 흐르는 그 방 안이 쾌적한 냄새를 풍기고 있음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정은 그 창고를 가로질러 방 한쪽으로 갔다. 요정의 몸 앞에는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가 떠 있었다.
"이쯤이었던 거 같은데... 아, 찾았다! 여깄네요."
먼지가 제법 쌓일 정도로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상자를 그 요정은 도르래를 사용해서 꺼냈다.
"근데 이 물건을 어디에 쓰시러고요?"
"아, 페리온에서 급히 찾는다고 해서 저희가 운반하러 왔습니다."
그 상자는 제법 크기가 컸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오 본인의 키의 3배는 되어 보였다. 둘은 이 상자를 어떻게 운반할지 고민하다가, 요정이 '직접 운반해 주겠다'라며 친절을 베풀자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창고 밖으로 나가자 엘리니아 특유의 초록빛의 넓은 공간이 보였다. 마음이 탁 트이고 안정되는 듯했다.
"좋은 장소네. 어떻게 이런 풍경을 만들 수 있을까. 현실에도 이런 장면이... 어.."
그는 문뜩 자신이 점점 이곳이 현실이고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가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알아챘다.
"왜 그래?"
"어.. 아무것도 아냐."
둘은 어느새 손을 잡고 있었다.
(ps. 저 커플 이뤄젔으면 좋겠다에 찬성하시는 분? 전 개인적으로 반대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