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느냐 미카?"
침대 속에서 뒤척이던 미카가 눈을 뜨며 일어나자 옆에 있던 루미에라곤이 말했다.
"가봐야 돼요."
"자, 잠깐! 미카!"
그러거나 말거나 금발의 소녀는 헤드폰을 챙겨들고는 외투를 입고 빠르게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고는 빠르게 돌아가는 차원의 문 너머로 들어갔다.
"개판이네."
하늘을 빠르게 날아다니면서 그녀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붉은색의 머릿결을 휘날리면서 그녀는 땅으로 뛰어내렸다. 동시에 가방에서 이어져 나온 끈을 세게 잡아당기자 낙하산이 펴졌고, 흰색과 빨간색의 부채꼴의 연속이 드러났다.
"오랴-아!"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휘두르자 거대한 검기가 동그랗게 생기며 지상으로 날아들었고, 그 검기는 곧장 지상에서 돌격 중이던 야마르차 병사들을 두동강 내버렸다.
"시간 한 번 참 잘~ 지키네요 시난주 선생."
옆에서 싸우고 있던 페리온 병사 하나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시끄러워."
그리고는 전방으로 달려나가 언데드 한 놈에게 그대로 칼을 꼬라박았다. 뼈가 빠스라지면서 몸이 두동강이 났고, 그대로 칼을 휘두르며 뒤에 있던 다른 언데드의 목덜미를 후려갈겨버렸다. 그 반동을 이용해서 다시 한 번 더 휘둘러서 옆에서 달려들던 녀석의 칼을 부러트린 뒤, 기합을 지르면서 검을 땅에 꽂았다. 그러자 지면에 강한 충격파가 일어나며 주위에 있던 모든 사물들이 휘청거렸다.
"별거 아니네."
그리고는 땅을 세게 밟더니 십자 모양으로 거대한 균열이 생기면서 용암이 지면을 뚫고 솟아올랐다.
"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시난주가 딱 정면을 쳐다봤을 때 그곳에는 번쩍이며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녀는 이상하단 느낌이 들어 즉시 뒤로 달려서 전선에서 빠져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아까 시난주가 있던 자리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격렬한 섬광 때문에 대검으로 그녀는 얼굴을 가렸다. 몇 초 뒤 빛이 없어지자 대검을 얼굴에서 치우면서 그녀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일 안 하고 그림 그리고 싶다..."
그러고는 갑자기 눈이 커지더니 양손으로 검을 잡고는 자신의 기운을 모조리 대검에 밀어 넣어버리는 것이다. 검에서 연신 붉은빛이 감도면서 한눈에 보아도 강력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다들 피해!"
갑자기 시난주가 사라지더니, 하늘에서 붉은빛이 한 줌 떨어졌다. 그러고는 아까 생긴 그 무언가, 아니 그 이상의 격렬한 폭발이 일어나며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날려버렸다.
"피할 시간도 안 ㅈ..."
"붉은 사냥개 길드, 12시 44분 30초에 전원 페리온에 도착했습니다. 이를 대족장님께 신고합니다."
갈색의 달라붙는 옷 위로 붉은 외투를 입은 건장한 사내 한 명이 대족장 앞에서 거수경례를 했다.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한 책임은 지금 묻진 않겠네. 어서 가보게나."
"알겠습니다 대족장님."
그러고는 그 'NoNaMe'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붉은 사냥개 길드 대표는 길드원들이 열을 맞춰 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면서 팔을 휘둘러 전장으로 돌입한다는 신호를 주었다.
"거 참, 중요할 때 공석이라니 성가신 놈들이네요."
옆에서 보고 있던 구르는 천둥이 투덜대면서 말했다.
"아마 과거에 이미 예정됐던 행사였던 것 같은데 너무 신경 쓰진 말아도 될 것 같은데, 천둥아."
"하지만 아버지,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는..."
"내 그 성격을 좀 고치라고 하지 않았느냐?"
"네 아버지...."
무언가를 씹은 듯한 표정의 천둥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야?"
"다시 거기에 가 봐야지. 다크윈드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잖아? 유사시에는 pvp도 서슴지 말아야 돼."
"맞다.. 여기 이제 현실이니까 죽일 수 있겠구나?"
그러고는 시우는 다시 인벤토리에서 오토바이를 꺼내 시온과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서 다시 골두스 뉴타운에 도착해보니, 아까의 요란스런 소동과는 별개로 굉장히 조용했다. 다시 험플스 아지트로 가보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벌써 튄건가...'
라는 생각에 시오는 무턱대고 문을 열어보았다. 내부 또한 조용했다. 두 사람이 천천히 철로 된 계단을 내려가자, 거기에는 아까 그 일행이 먹고 마신 듯한 아직 소멸하지 않은 포장지와 음식물 찌꺼기가 보였다. 탁자에 가서 주위를 둘러보니, 계단 밑에 있는 벽으로 무언가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목표 금액=400억 메소/혁명!!'...?'
"왜 그래?"
"어... 저기 봐."
시오가 가리킨 곳에는 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흐음? 400억 메소나 벌었다고? 저놈들이?"
"이거 돈 좀 받겠는데... 잠깐, 왜 저렇게 돈을 많이 필요로 하는 거지?"
"난들 알아, 남자애들이니까 뭐 건담 프라모델이라도 사려나?"
시온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음... 저렇게 자금을 많이 필요로 하는 건 커닝시티 빌딩 매수나 군자금 쪽, 아니면 연구 계통일 텐데..."
조용히 생각에 잠기던 시오는 문뜩 무언가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저 3가지가 전부 포함되는 건 아닐까...?'
"내 생각이긴 한데.."
시온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을 꺼냈다.
"음? 왜?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났어?"
"그 왜, 얼마 전에도 있었잖아, 그... 뉴커닝돔 신형 무기 설계도 유출 사건 말야."
"응, 그 사건 나도 알아. 근데 왜?"
"어쩌면 저놈들이 그 짓이랑 적어도 연관은 있는 게 아닐까? 페리온에 있을 때도 왠 괴상한 무기가 있었잖아?"
"음... 돈이 많다... 욕심이 많다... 비리?"
"비리?"
시오는 계속 생각에 잠겼다.
"트라이아 무기고 도난 사건도 그렇고, 관리자들 치고는 너무 쉽게 매수된단 말야. 그렇다고 생각 안 해?"
"어... 그렇지?"
"그럼 혹시 이번 사건도 전체적으로 종합해서 보면 누군가의 비리가 트리거가 돼서 저놈들이 무기를 손에 넣었고, 그 무기를 운용하거나 기타 무기들을 얻어서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자금이 필요했다...라고 볼 수도 있겠지?"
"음... 그런가?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러면서 시오는 메뉴 창을 열고 자신에게 연락이 온 상대방을 확인했다.
'시난주'
"음? 이 분한테서 연락이 올 리가 없는데.."
그녀의 이름이 적힌 반짝이는 막대를 누르자 초록색과 빨간색의 전화기 버튼이 각각 생겨났고, 초록색 버튼을 누르자 화면 너머로 폭탄음과 함께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시오? 아시, 아세오? 아 몰라! 야 짐꾼!! 너 어디야!!"
"ㄴ.. 네? 짐꾼? 이봐, 난 짐꾼이 아냐!!"
"아니 그딴 건 일단 신경 끄시고, 지금 내가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그러는데, 다시 한 번 짐 좀 날라다 줘라, 응?"
".... 하?"
"끊는다!! 빨리 와!!"
"저.. 저기요!! 저...... X 발."
"아는 사람이야?"
시온이 인벤토리에서 솜사탕 하나를 꺼내서 먹으면서 물었다.
"어... 시난주라고, 인기 있는 팬아트 업로더인데, 다짜고짜 심부름 좀 해달래."
시온은 먹고 있던 솜사탕을 떨어뜨릴 뻔했다.
"ㅁ.. 뭐?! 시난주?! 그 매뷰거진에 나오는 유명인 말야?!!"
"어... 왜?"
"'어... 왜?' 가 아니지!! 그런 유명한 사람을 친추했으면 나한테도 알려줬어야 되는 게 정상 아냐?!!"
"왜 정상인데?"
"..... 니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으...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데?"
"페리온."
"뭐?"
"페리온에 있데. 뒤에서 폭탄도 막 터지니까 싸우는 중인가 본데?"
(ps. 태평한 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