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하늘색의 옷과 모자를 입은 아시모프와 그의 옆에는 문신과 알록달록한 복장을 한 주술사 하마르가 서 있었다.
"....! 아시모프! 그리고 그 옆은... 하마르 씨?"
에레브는 살짝 놀란 목소리였다.
"여제님, 안녕하십니까."
아시모프가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왔다.
"으음.... 안녕하다고 말하기엔 상황이 좀 그렇습니다만."
"허허, 요즘 세상이 참 흉흉하긴 하죠."
에레브는 아시모프의 표정을 잠깐 살폈다. 전보다 훨씬 늙어 보여 측은했다.
"그러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일단 이 벽화에 대해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신지요?"
"'그들'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만."
"그들이요?"
시오는 뜬금없이 튀어나와 질문했다.
"몇십 년 전쯤,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반정부 운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 그 사건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만.."
에레브가 아시모프의 말을 자르고 헛기침을 했다.
"그 이야기는...."
"아, 알겠습니다. 무튼, 그런 일이 있었습죠."
모험가들은 한동안 두 사람의 태도에 멍 때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제일 먼저 정신 차린 것은 시온이었다.
"음? 뭔데요 그게?"
"아, 그런 사건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말하기 조금 곤란하니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모프는 몇 번 헛기침을 하고는 벽화를 바라봤다.
"그 사건 이후로 반정부 주요 세력이 다시 규합한 모양입니다. 어떻게 투르카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둠의 힘을 사용할 줄 아는 걸로 보이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정부인가...?'
시오는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던 하마르가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 말인데, 아마도 단순한 세계 지배가 목적은 아닌 것 같네만."
특유의 갈라지는 늙은이의 목소리를 내면서 하마르가 한 말이었다. 에레브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했다.
하마르와 아시모프가 내놓은 벽화에 대한 해석은 이러했다.
우선 메이플 월드와 쉐도우 월드 외에도 제3의 세력이 이 전투의 원흉이라는 점이 핵심 내용이다. 또 제3의 세력은 과거 반정부 운동을 주도했던 쪽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들은 투르카의 지배를 받지 않고도 어둠의 힘을 다룰 수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과거 에레브 이전의 황제 시절, 그들의 주 목적은 이 세계의 지배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걸 모토로 내세웠다는 것이 아시모프의 발언.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힘을 갖추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 않나요 현재로서는?"
"그렇긴 합니다. 일단 붙어 봐야 전력 비교를 할 수 있겠죠."
그러자 에레브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직접 맞붙는 것은 위험해요. 그자들은 '용의 분노'를 가지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아시모프와 하마르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잘도 그런 미;친 물건을!!"
"말도 안 됩니다 여제님! 그 물건은 이미 오래전에 유실된 것으로 판결 났습니다!"
에레브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물건이 떡하니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죠....."
한동안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모험가들이 슬슬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게 지금 현실이냐느니, 정말 인공지능 맞냐느니, 제작진은 도대체 게임을 어떻게 만들었길래 상황이 이렇게 됬냐느니 하는 식이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이제 모험가 여러분들께선 돌아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에레브가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찬 상태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택시 안에서 시온이 말을 걸었다.
"뭘 어떡하긴, 자료를 모아야지."
두 사람은 다시 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트라이아로 목적지를 정했다.
트라이아 정거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번화가를 이루었다. 넓다란 광장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세계를 마치 현실처럼 즐기는 모습이었다. 아니, 그 사람들에겐 이미 이곳이 현실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세계에 발을 내딛고, 두 사람은 트라이아 도서관으로 바삐 움직였다.
그때였다.
"야 이 도둑놈아!!"
두 사람은 자동으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사복을 입고 머리엔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한 여자의 가방을 들고 달아나는 것이다. 이 게임의 특징상 반경 7m가 벗어나면 상대방의 이름이 머리 위로 보이지 않게끔 설정되어 있다. 두 사람은 순간 본능적으로 그 청바지를 입은 '도둑'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워낙 민첩 점수를 높여 놓은지라 두 사람이 따라잡기 쉽지 않았다. 그 남자는 먼저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 장터를 향해 갔다. 인파가 많은 쪽이면 확실히 잡기 어렵게 되기 때문에 미리 골치가 아팠다.
장터에 진입하자마자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바람에 자주 도둑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만 모자를 푹 눌러쓴 건 그 사람 하나 밖에 없기에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중간에 시온은 그 남성에게 하얀 물건을 집어던졌으나 별로 아프진 않은 건지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 나갔다. 장터를 넘어 퀸즈 타운에 도착하자 결국 도둑은 사라졌다.
"하.... 드릅게 빠르네...."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시온이 투덜거렸다. 시오 또한 격하게 숨을 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게시판을 잠깐 보다가 그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시온, 여기..."
"어?"
시오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수많은 지명수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한 놈이 아니야?"
최근 들어 메이플2 안에서 발생하는 범죄 소식에 대해 여러 번 접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나 많은 양이 있는 줄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 게시판을 살펴봤다. 게시판에 적혀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세한 프로필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소속 길드원은 대체로 같은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길드를 GM 차원에서 제제, 해산시켰음에도 다시 뭉친 걸 보면 생각보다 질진 생존력이다. 밑에는 이런 문구가 동일하게 적혀 있었다.
'해당 길드나 범죄자를 목격하는 즉시 신고 바람.'
"아까 내가 던진 거 뭔지 알아?"
"음?"
시온은 손짓으로 창을 열고는 아이템 칸에서 레이더를 꺼냈다.
"짠!"
그녀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시오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요~올, 좀 짱인듯?"
두 사람은 레이더를 살펴봤다. 발신기가 부착된 도둑은 현재 '골두스 뉴타운'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