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여제님!!!"
신하 하나가 황급하게 여제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음?"
옆에 서 있던 황실총리 칼이 몸을 돌려서 여제와 거의 동시에 같은 쪽을 바라봤다.
"첸, 진정하게나, 일단 숨 좀 쉬게."
칼은 침착하게 그 '첸' 이라 불리는 신하를 진정시키려 했다.
"첸,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큰 일이라도 난 겁니까?"
"헉....헉....ㅇ..휴...... 흐어,"
그는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여제님, 큰일났습니다, 지금 북동쪽 산사태 설봉우리 지역에 막대한 양의 에너지 흐름이 감지되었습니다!"
"에너지 흐름이라니... 혹시 유저들이 집단으로 전투를 벌이는 게 아닌가요?"
"아니요, 통상의 마법이 아닙니다, 방금 막 보고받은 내용에 따르면 이건 마족의 수준입니다!"
"마족이라니, 하지만 제가 감지할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여제는 유독 어둠 에너지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서, 소량의 마력이라도 먼곳에서 금방 느낄 수 있는 일종의 경보 능력이 있다.
"그게....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쨋든 마족의 소행이 틀림없습니다! 이정도로 강력한 능력이면 지형 째로 붕괴시키는 게 가능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강력하길레 그렇게 숨가쁘게 달려오셨습니까, 그럼 지금 당장 그곳으로..."
여제가 뛰어가려고 했으나, 곧 첸 옆으로 다른 신하 하나가 또 뛰어왔다.
"여제님! 여제님!"
그는 아까 그 신하처럼 헉헉대면서 달려왔다.
"헉...헉..... 지금 설봉우리 근처에서, 시공간의 축이 심하게 뒤틀리는 현상이 목격되었습니다!"
"ㄴ...네?! 뭐라고요?!!"
시공의 뒤틀림.
본디 있어서는 안될 현상까지는 아니지만, 마치 블랙홀에 들어간 것처럼 순간적으로 대상 구역과 외부 구역의 시간차가 생겨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공의 뒤틀림이라는 것은, 이 세계의 마력을 이용해서 적절히 제어할 수만 있다면, 대상 구역에 인공적으로 자신이 만든 세계의 경계가 생성된다. 그 세계는 시전자 본인이 만든 세계이므로 신과 같은 권능을 누릴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지형을 통째로 바꿔버린다거나, 있을 수 없는 허구의 물체를 소환한다거나, 아니면 공간 자체가 허수가 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런데 지금 관측되는 것은 아예 공간 자체를 비틀어서 인위적으로 조작해버리는 현상이였다. 한마디로, '신'과 같은 등급의 누군가 또는 그런 권한을 획득한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이 세계가 만약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라면, 그 세계를 만든 시전자의 권한으로 이 세계를 조작하는 것과 같은 행위라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 보고 하나로 황궁은 발칵 뒤집혔다.
"야 이 개X식아 뭘 하려는거야!!"
"그건 두고보면 안다."
투르카는 뒤돌아 수정을 바라본 채로 말을 했다.
수정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금이 가 있었다. 이 이상 금이 가면 수정이 깨져버릴 것이다.
"그거 아나? 이 수정은 상당히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지. 물리적인 어떤 성질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 공간 자체를 바꿔버릴 정도로의 힘이 말이야."
"그게 GM 어카운트라도 된다는 거냐?"
"음, 정확히는 아냐, 하지만 그보다 더한 물건이지."
투르카의 말은 계속 시우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옆에서 얼음처럼 굳어진 하림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알아듣기 쉽게 좀 얘기해 봐 새X야."
투르카는 뒤를 돌아보더니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설명해주지,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제부터 아주 잠시동안은 내가 신이 될 거다."
"신? 그딴건 존재하지 않아. 게다가 넌 아무도 신으로 인정하지 않을껄?"
시우는 강렬하게 투르카의 말에 반발했다.
"그래.... 언젠간 이 세계 모든 사람들이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될 지도 모르지. 점점 믿음이 사라져 가는 순간들이 늘어날테고... 그 끝은..."
투르카는 계속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했다. 하지만 그/그녀의 말 끝은 흐려졌고, 이내 말을 바꿨다.
"믿음이 부족한 자여.... 한가지만 제대로 알려주겠노라."
그/그녀는 벌써부터 신이 된 듯한 말투였다. 당연히 제수 없었다.
"이 세계가 가짜라고 생각하나?"
시우는 이자식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계속 생각해봐도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었다. 가짜라고? 도대체 이녀석은 정체가 뭐야. NPC 주제에 사람보다 더 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글쎄...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세계니까 허구 아닌가?"
"그렇군....."
그/그녀는 다시 뒤돌아 수정에 손을 갔다 댔다. 그리고 잠시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수정에서 강렬한 빛이 일기 시작했다. 무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슴이 마구 두근되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위험하다는 감정마저 들었다. 순간 본능적으로 메뉴를 불러내려고 했으나 몸이 마비되어서 로그아웃할 수가 없었다.
"이 세계가 이제 진짜가 될 것이다... 너희가 허구로 생각하는 이 세계에서 생활하면서 어떤 대답을 추론해 낼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
그러면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주변이 환하게 밝혀졌다.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하나의 소리가 맴돌았다.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전달하러 왔노라!!"
무신론자인 시우는 게임 케릭터가 완전히 맛이 갔다고 생각하려고 했으나, 곧 정신이 몽롱해졌다. 점점 앞이 안보이더니, 어느 순간, 의식을 잃어버렸다.
"이 개자....."
그의 말은 무언가가 산산조각나는 거대한 소리에 파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깨질듯이 머리가 아프다.
일어나고 싶은데 무언가가 위에서 누르는 느낌이라 꺠어나기 쉽지가 않다. 가까스로 정신이 거의 다 깬 거 같아서 눈을 대충 비몽사몽으로 둘러보니, 다들 막 일어나는 참인 것 같았다. 하림은 아직도 기절해 있었다. 일단 무언가 잘못되었단 생각에 메뉴를 켜보았다.
"어?"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설정 메뉴를 누르자 대부분의 기능이 잠겨 있었고, 제일 중요한 로그아웃 버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인벤토리 기능은 다행히 제대로 작동했지만, 그 외에 게임에 플레이어 권한으로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은 전부 막혀 있었다. 일단 맵을 켜보았다. 정상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정이 사라져 있었고, 바닥에는 어떠한 형태의 파편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게 있었다. 바닥의 감촉이 너무나도 생생하다는 것이었다.
"음...?"
그는 연신 바닥을 쓰다듬었다. 이상하게도 너무나 생생했다. 마치 실제 벽돌을 만지는 것처럼....
"음?"
그는 자기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게임상에서 기존에 느꼈던 고통과는 다르게, 강렬하게 몸이 아프다고 느꼈다. 순간, 자신이 아직도 기절해 있나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길드장의 말로 바로 꺾였다.
"다들, 잘들어, 이건 어디까지나 내 직감이지만, 아마, 게임이 현실이 된 거 같다..."
그의 말은 다소 암울했다. 끝에 말을 점점 흐리면서 두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다들 서로를 바라봤다.
시우는 바로 투르카의 말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신이 된다? 잠시동안? 그럼 그 잠시동안이라는 것은 수정이 폭발한 직후라는 것인가? 만약 정말로 그가 신이 되었다면, 이 세계가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는 건가? 그녀석은 도대체 뭘 위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거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가지 물음들이 뇟속에 떠올랐지만, 어느 한가지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여긴 더이상 게임이 아니라는 것. 메뉴는 불려오지만, 이곳이 만약 게임이라면, 게임이라면...... 게임..... 현실이 된 게임...... 그래서 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게임을 베이스로 해서 현실을 구현해낸 것이니 게임적인 요소는 아직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제일 걱정인 것은 사망이였다. 만약 죽는다면, 여기가 현실이니 실제로 죽는 것인가...
복음을 전달하러 왔노라.... 그는 투르카가 사이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그녀의 말은 굉장히 거슬린다. 복음을 전달하러...복음.... 도대체 무슨 소리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제 깨어 있었는지 하림이 옆으로 다가왔다.
"야 이 자1식아, (혹시몰라 자체 필터링 했습니다) 너 투르카하고 아는 사이야?"
"어....그게..."
"바른대로 말해 새X야."
그녀는 추궁하듯이 시우를 몰아붙였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3년 전, 중학교였을 때였다.
그때는 평범하게 쉐도우 월드에서 퀘스트도 깨고 상자도 모으면서 생활하고 있었던 차였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 세계에서 우연찮게 대규모 PVP 상황이 발생했고, 순식간에 멜타 댐은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런 현장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투르카가 난입해서 한마디로 개판이 발생한 것이다.
대충 정리해서 말해주니 하림이도 나름 납득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만나서는 도대체 어떤 대화를 했길레 저녀석이 너를 기억하는 건데?"
그렇다. 투르카는 시우를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무언가 불안한 듯한 마음 상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부정적인 가치관'이 투르카의 기억에 꽤나 깊이 세겨진 듯하다. 덕분에 유독 집요하게 투르카는 PVP 현장에서 시우를 따라다녔고, 한동안 싸우면서 그/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제법 피가 많이 깎이자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겠네, 믿음이 부족한 자여" 라고 하면서 떠나간 것이었다.
"도대체 넌 정체가 뭐야..... 유저의 탈을 쓴 GM씨? 투르카가 너한테 관심을 가지는 데엔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그녀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말하지는 않았다. 말하면 괜히 분위기 어두워질 테니깐. 하지만 상황이 점점 꼬여가고 있다. 만약 여기가 정말 현실이라면.... 원래 살던 세계에 있던 모든 것은 어떻게 되는건지도, 궁금한 게 산더미처럼 불어만갔다.
(ps. 소설 쓰면서 저도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네요)